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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언장 쓰기: 기억을 남기는 법

by jjoll2 2025. 4. 23.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삶을 온라인에 남기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수천 장의 사진, 가족과 나눈 메시지, 블로그에 적어둔 생각들, 구독 중인 이메일과 유튜브 채널, 은행·쇼핑·SNS 등 셀 수 없는 계정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우리가 떠난 뒤 이 디지털 자산들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디지털 유언장(Digital Will)’은 이제 더 이상 미래형 개념이 아닙니다. 중장년기에 접어들며 우리는 물리적인 재산만큼이나 중요한, 온라인 상의 정보와 기록을 정리하고 남기는 일을 고민해야 할 시기에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유언장이 왜 필요한지, 무엇을 포함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지를 실용적으로 정리합니다.

디지털 유언장 쓰기
디지털 유언장 쓰기

1. 내가 떠난 뒤, 내 계정은 어디로 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 하나에 수많은 계정을 로그인해둡니다. 예를 들면 카카오톡, 문자, 이메일, 네이버, 구글, 애플 계정, 사진 백업 서비스(구글 포토, iCloud 등), 온라인 금융 서비스, 쇼핑몰, 배달 앱,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블로그 등이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본인이 직접 접근 권한을 넘기지 않으면, 유족조차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구글, 애플 등 일부 플랫폼은 ‘사망자 계정’ 처리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복잡한 인증 절차와 법적 문서 제출이 필요하고, 사전에 지정하지 않았다면 삭제 또는 영구 폐쇄될 수도 있습니다.

즉, 내가 아무 준비도 하지 않으면, 평생 쌓아온 온라인 기록과 자료는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것이 유족에게 법적·심리적으로 혼란을 남기기도 합니다.

2. 디지털 유언장에 담아야 할 핵심 항목들

디지털 유언장은 어렵거나 무거운 문서일 필요 없습니다. 일단은 내가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자산을 ‘정리’하고 ‘지정’해두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다음은 디지털 유언장에 포함하면 좋은 주요 항목들입니다.

1) 주요 계정 목록과 접근 정보: 이메일, 클라우드(구글 드라이브, 네이버 MYBOX 등), 스마트폰 잠금 비밀번호, 컴퓨터 로그인 정보, 금융 관련 앱(은행, 보험, 증권 등)

2) 사진과 영상 자료 백업 위치: 어떤 서비스에 몇 년치 사진이 저장되어 있는지, 꼭 남기고 싶은 가족 사진, 영상은 따로 표기

3) 소셜미디어·블로그·유튜브 처리 지침: 그대로 유지, 삭제, 비공개 중 선택, 콘텐츠(글/영상 등)를 자녀나 가족에게 어떻게 넘길지

4) 메시지와 기록의 처리: 카카오톡 대화, 메일 보관 여부, 개인 일기장 앱, 메모 등 사적 기록 공개 여부 결정

5) ‘디지털 유산 관리자’ 지정: 이 모든 정보를 관리할 신뢰할 수 있는 1인을 선택해둡니다.

이런 항목들을 종이문서 또는 안전한 디지털 문서(암호화된 PDF 등)로 정리해 보관하고, 가족이나 지정된 관리자에게 그 존재를 알려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3. 디지털 유산을 위한 현실적인 준비 방법

디지털 유언장을 준비한다고 해서 반드시 법적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의 방법을 실천하면서 점차 체계를 잡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① 간단한 목록부터 시작하기: 지금 사용 중인 계정과 앱, 서비스들을 모두 종이에 적거나 엑셀로 정리해보기. 로그인 방식, 이중 인증 여부까지 기록.

② 비밀번호 관리자 앱 활용: 1Password, Bitwarden, LastPass 같은 앱에 계정과 비밀번호를 저장해두고, 마스터 비밀번호만 가족에게 공유 (혹은 별도 기록)

③ 사진과 문서 정리 루틴 만들기: 월 1회 중요한 사진은 로컬 저장소 + 클라우드 백업 병행.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서는 별도 폴더로 분리 저장

④ 클라우드 ‘사망 처리 설정’ 활용하기: 구글: '비활성 계정 관리자' 설정 가능 (일정 기간 미접속 시 지정된 사람에게 전달됨). 애플: '디지털 유산 연락처' 설정으로 사망 후 접근 권한 부여 가능

중요한 건, 이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군가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암호화된 파일이든, 종이문서든, ‘관리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세요.

나의 디지털 흔적을 정리한다는 것의 의미

사람은 누구나 흔적을 남기고 떠납니다. 그리고 이제 그 흔적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훨씬 더 많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중장년기에는 삶을 회고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떠난 후 남는 것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디지털 유언장은 단순한 ‘사후 정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을 정돈하고, 나의 삶을 어떻게 기억되게 할지를 미리 설계하는 적극적인 선택입니다. 삶의 마지막까지 내 의지를 담는 일이며, 가족에게는 혼란 대신 감사와 정리를 남겨줄 수 있는 준비입니다.

지금 내 폰 속의 사진, 노트북 안의 문서, 블로그의 글, 유튜브의 영상들… 이 모든 것이 ‘디지털 나’입니다. 그 ‘나’를 존중하는 가장 성숙한 방법은, 언젠가를 기다리지 않고 지금부터 기록하고 남기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디지털 유언장을 한 줄부터 적어보세요. 그것은 미래의 당신과 가족에게 가장 따뜻한 배려가 될 것입니다.